에니어그램 영성 묵상 (5번 유형) 202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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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들목하늘교회 작성일24-06-05 09:59 조회320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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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4.06.05.(수) 에니어그림 5번 발제 및 나눔
5번 유형 2일차 - 불확실성의 수용
번역 전문
5번으로서, 저는 ‘왜 그럴까’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 그런건지 알고 싶습니다. 만약 제가 어떤 문제를 목격했다면, 저는 애초에 그것이 왜 문제일지 가능성을 찾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것이 근본에 도달하는 것으로 종종 봅니다. 나무의 가지, 잎, 밑동을 넘어 문제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을 찾아 나서는 것은 조금 더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싶다면, 수면 아래로 내려가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것이 문제 해결과 문제 해결에 있어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는 기량이지만, 우리 5번은 또한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파내고 있는 뿌리들이 은혜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더 건강한 곳에 있습니다. 인연을 맺거나 새로운 발견을 하는 것도 좋고, "모르겠어요... 이것에 대한 답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왜 그런지 궁금해도 괜찮습니다. 파헤치고 답을 찾는 행위와 사랑에 빠지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가 말한 것처럼 "질문 그 자체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 안에서 우리는 불확실성을 자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탐색과 사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단순히 답을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미스터리와 사랑에 빠지는 모든 방법을 탐색하는 것에 말입니다. 무엇이든지 배우는 것과 사랑에 빠지는 것, 하나님은 우리가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아직 세부적인 내용이 우리에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우리가 질문에 충분히 집중할 수 있는 은혜가 있습니다.
은혜는 우리가 지식이 부족하고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뿌리까지 파고들었을 때에도 하나님의 평화를 경험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은혜이며, 우리가 충분히 훌륭하다고 느끼지 않더라도 괜찮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내게 이르시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퍼질 것임이라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기쁜 마음으로 내 약한 것을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12:9)
모든 물음표 반대편에서 은혜가 그곳에서 우리를 만날 것이라는 사실을 계속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답을 찾든,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의 근본 원인을 찾든 얻지 못하든, 우리는 하나님의 눈에 전혀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든 것 속에서도 이것은 여전히 사실입니다. 우리는 질문을 할 수 있고 답을 찾을 수 없을 때에도 여전히 사랑을 받습니다.
하나님, 오, 당신의 임재를 누리는 것은 얼마나 큰 선물입니까? 그 곳은 은혜와 질문을 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는 곳입니다. 내 마음은 그 답을 알고 싶어 간절히 갈망하며, 찾는 동안 내내 사랑을 얻습니다. 당신은 제가 필요로 하는 답이 있든 없든 당신 사랑의 품에 안겨서 경이로움의 거리와 불확실성의 깊이에 관계없이 평화를 자유롭게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신비와 당신이 내 앞에 계속해서 펼쳐질 모든 교훈과 아름다운 것들을 자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아멘.
번역문 요약
5번으로써 필자는 왜 그럴까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무의 가지, 잎 밑동을 넘어 문제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을 찾아 나서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왜 그런지 궁금해도 괜찮습니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가 말한 것처럼 "질문 그 자체를 사랑"하려고 노력하십시오. 단순히 답을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미스터리와 사랑에 빠지는 모든 방법을 탐색하는 것 말입니다. 우리가 답을 찾든,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의 근본 원인을 찾든 얻지 못하든, 우리는 하나님의 눈에 전혀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든 것 속에서도 이것은 여전히 사실입니다. 우리는 질문을 할 수 있고 답을 찾을 수 없을 때에도 여전히 사랑을 받습니다.
5번 유형 4일차 - 고독의 선물
번역 전문
5번 유형으로써,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있을 때 에너지가 채워지는 것을 느낀다. 내게 울러 퍼졌던 예수님의 삶의 한 측면은 고독이라는 주제이다. 내가 5번 유형임을 깨닫기 전에 예수님이 외로운 곳에 가신다는 생각은 나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에너지가 넘치고 외향성이 정석일 것 같은 교회 문화에서 자란 어린 시절, 나는 복음 곳곳에 엮여 있는 예수님의 고독의 순간을 소중히 여겼다. 누군가 예상하는 것처럼 활기찬 성격으로 나타날 수 없다고 느낄 때, 나는 다음과 같은 단어에 매달렸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셨다. (마 1:35)
예수가 다른 사람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낸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예수님은 고독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예수님은 떠날 시간을 내셨다. 라는 사실도 사랑한다.
5번 유형로써 드리는 기도는 내면의 에너지가 부족할까 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단순히 하나님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고독 속으로 나아가는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님이 그날 내게 '갈망하는 것을 열어라. 문을 닫고 조용한 곳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단절되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씀해주신다.
나는 젊은 5번 유형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기를 바란다. 어린 5번 유형들은 종종 외부 세계에 의해 침범당한다고 느낀다. 어린 시절, 우리는 종종 압도당하고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 우리는 사적인 공간을 갈망했지만 찾기가 어려웠다. 우리는 고독을 갈망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너무 폐쇄적이라고 해석했다.
우리가 나이가 들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의 행동을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건강하지 않은 방식으로 세상에서 철수할 수도 있지만, 계속하자.
예수님이 하신 방식으로 하나님을 보고, 고독을 하나님과 연결하는 방법으로 보는 것이다. 여기 고독에 대한 사실도 있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이나 우리가 마침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준비가 되어 있는 배운 것을 가지고 고독에서 벗어날 필요가 없다. 고독 속에서 우리는 그저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가 세상에 돌아왔을 때, 우리는 여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 참여하라. 빛의 등대가 되어라. 사랑의 본보기가 되어라. 우리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거나 우리가 특정한 시나리오에 어떻게 들어맞는지 알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순간들, 그리고 우리의 순간들, 그리고 우리의 순간들만을 통해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
하나님, 저에게 고독의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생각하고 들을 수 있는 공간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종종 세상에 압도당한다고 느끼며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강해지고 새로워진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공동체의 선물에 감사드리며, 고독 속에서도 다른 이들과 교제를 허락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번역문 요약
5번 유형으로써, 필자는 혼자만의 시간이 있을 때 에너지가 채워지는 것을 느낀다. 내게 울러 퍼졌던 예수님의 삶의 한 측면은 고독이라는 주제이다. 에너지가 넘치고 외향성이 정석일 것 같은 교회 문화에서 자란 어린 시절, 나는 복음 곳곳에 엮여 있는 예수님의 고독의 순간을 소중히 여겼다. 누군가 예상하는 것처럼 활기찬 성격으로 나타날 수 없다고 느낄 때, 나는 다음과 같은 단어에 매달렸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셨다. (마 1:35) 예수가 다른 사람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낸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예수님은 고독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님이 그날 내게 '갈망하는 것을 열어라. 문을 닫고 조용한 곳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단절되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씀해주신다.
고독 속에서 우리는 그저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가 세상에 돌아왔을 때, 우리는 여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 참여하라. 빛의 등대가 되어라. 사랑의 본보기가 되어라. 우리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거나 우리가 특정한 시나리오에 어떻게 들어맞는지 알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순간들, 그리고 우리의 순간들, 그리고 우리의 순간들만을 통해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