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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수요예배_에니어그램묵상집나눔모임(9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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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들목하늘교회 작성일22-09-29 16:55 조회9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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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4(Nine) 침묵의 선물


자라면서 텔레비전은 항상 켜져 있었고, 배경에서 끊임없이 잡음이 났다. 나는 거의 참을 수 없었지만, 가끔 Knight Rider나 The A-Team 또는 Fresh Prince of Bel-Air를 보곤 했다.


내 영혼에게, 윙윙거리는 TV는 칠판에 못을 긁는 것과 같았다. 엄마는 그녀와 Abuelita 혹은 우리 가족 중 누군가가 그것을 보고 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텔레비전을 좋아하셨고 지금도 좋아하신다. 엄마는 맨하탄과 푸에르토리코에서 살다가 펜실베니아 북서부 시골에 살게 되었는데,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쭉 텔레비전이 엄마의 친구가 되어왔던 것 같다. 그리고 TV가 꺼진 흔치 않은 경우에는 라디오가 켜져 있었다.


어쩌면 TV 그 자체가 아니라 연속극과 주간 토크, 드라마 쇼가 내 마음을 괴롭혔을지도 모른다. 가족 문제에 대한 불안이 나를 잠 못 들게 했을 때, 나는 10살 때부터 밤에 라디오 설교자의 말을 듣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TV나 자주 일어나는 가족 간의 갈등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나는 우리 집을 둘러싼 들판이나 숲으로 도망치곤 했다. 가끔은 덤불 속에 숨어서 세상을 바라보곤 했다, 변장한 채로 말이다. 나는 혼자 있고 싶었다. 난 평화를 원했다. 나는 하나님의 창조물 밖에서만 그것을 찾을 수 있었고, 그것은 여전히 내가 가야 할 곳이다.

나는 결혼한 지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우리는 케이블을 설치한 적이 없다. 짧은 기간 남편이 축구를 보거나 내가 임신했을 때 PBS에서 밤늦게 다큐멘터리를 보는 정도로만 TV를 시청했다. 그리고 나서 큰딸을 위해 공공도서관에서 빌린 만화 DVD를 재생할 수 있도록 TV를 보관해 두었다. 하지만 우리는 몇 년 동안 TV를 보지 않았다. Hulu도 Netflix도 없었다. 남편이 컴퓨터로 스포츠를 볼 수 있도록 유튜브 TV를 선물하기는 했다. 나를 위한 텔레비전은 없다.


심지어 아이가 생기기 전부터 남편은 우리가 "은둔자의 동굴"에 산다고 농담을 하곤 했다. 나는 침묵을 사랑하는 수도원적이고 사색적인 은둔자였다. 하루 종일 직장이나 학교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 침묵을 지키는 것은 선물이었고 또 선물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고요하고 수도원적인 성향을 갖고 있지 않은 세 명의 어린 딸이 있다. 그들이 깨어 있는 동안 내가 약간의 침묵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내가 욕조에 있을 때인데, 심지어 그마저도 10분마다 방해를 받게 된다. 그러나 그 침묵의 틈새에서 얼마나 달콤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지!


9번으로서 우리는 평화를 추구한다. 건강하지 못한 곳에서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평화를 추구한다. 그러나 건강한 상태에서 평화는 우리를 젊어지게 하고 우리가 세상으로 돌아가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할 수 있도록 활력을 준다. 침묵과 그에 수반되는 고독은 우리 자신을 돌아볼기회를 준다. 꿈을 꾸고, 계획을 세우고, 숨쉴 수 있는. 나는 그것들을 "침묵의 재창조"로 불렀다. 고요한 내 방, 창가 자리, 자동차의 붕붕거림과 꿀벌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현관 앞의 고요함 속에서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것은 나에게 좋은 징조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들도 그렇다. 깊은 숲 속에서 내 뼛속과 영혼 속까지 파고드는 고요함, 그 한가운데서 나와 함께 소리를 지르는 시냇물 소리, 인적이 드문 해변의 고요한 바다.


물론, 그러한 침묵과 환상은 우리가 다른 사람과 우리의 책임을 소홀히 할 정도로 지나치게 탐닉하면 파괴적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온전하고, 다른 사람들을 잘 사랑하고, 이 세상에서 우리가 되어야 할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침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며 우리가 우리의 선물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해준다.



당신은 침묵을 실천하는가 아니면 침묵으로부터 도망치는가? 왜 그런가?


침묵으로 물러나며 고독이 활기를 되찾고 있을 때와 또 침묵을 탈출의 한 형태로 사용할 때를 주목해 보라.







DAY13(Nine) 힘쓰고 하나님을 신뢰함


에니어그램 9번의 미덕은 행동이다. 우리는 연기(행동)을 할 때 훌륭한 "배우"이다. 행동의 요점에 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가 건강하다고 생각할 때는 스스로 힘쓰고 있다고 생각할 때이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쉬어야 할지, 어떻게 안식해야 할지 모른다. 우리는 안식일, 묵상, 삶에서 중요한 것에 대한 전문가이다. 우리의 핵심은 머리 속에 머물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일상 생활을 게을리하면서 혼자 마음에 만족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겸손과 친절로 열심히 일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이 우리의 타고난 성향이다. 아니 내 친구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랑하는 공동체의 에너지와 협력하여 우리의 에너지를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삶의 배를 타고 항해를 시작해야 한다. 정말로 우리가 선장이 되거나 아니면 하나님과 공동 선장이 되는 되어보자!

요한복음 6장 16-21절은 배에 탄 예수님의 제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선, 그들은 실제로 배에 올라타야 했다. 그들이 얼마 동안 노를 젓자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파도는 점점 더 커졌다. 이 모든 스트레스 즉 어두움과 점점 거세지는 파도, 삶에 대한 두려움, 예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궁금해하는 가운데 그들은 배에 접근하는 형체를 보았다. 물 위를 걸으며 그들에게 다가가신 분은 예수님이셨다.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셨는가, 아니면 각 부분에 발을 디딜 때 갑자기 파도가 잔잔해진 것일까?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까이 오셨을 때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그의 음성을 듣고 긴장을 풀고 그를 배 안으로 맞아들였다. 요한복음 6장 21절은 그들이 예수를 배에 오르게 한 후에 “배가 곧 그들이 가려던 해변에 이르렀다”고 알려 준다.

우리가 힘을 다할 때,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단계를 밟을 때, 그리고 우리의 배 즉 우리의 삶 속으로 하나님을 맞아드릴 때 우리는 주님이 도착하게 하시려는 해안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9번으로서 우리는 뒤로 물러선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도록 하실 곳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힘쓰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기억하라, 우리의 미덕은 행동임을. 우리의 악덕, 성향은 무활동인 것을.



당신은 하나님을 당신의 삶의 배에 앉히셨습니까?


행동을 취해야 하지만 대신 게으르거나 활동이 없는 삶의 한 영역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움직이시기 원하시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 당신은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까?





25일. 도움 요청하기


 최근 에니어그램 9번 친구가 "폐를 끼치는 것 같다"고 트윗한 것을 보았다. 그는 사람들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소셜 미디어나 실생활에서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메시지에서, 나는 그에게 너는 민폐가 되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했다. 사실, 그는 재능이 많다! 아부가 아니다. 사실이다. 9번들은 ‘내가 민폐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뿌리치고, 우리가 건강하고 온전하게 앞으로 나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바꾸어서 세상을 향해 적극적으로 재능을 사용해야 한다.

 병원에서 첫째 일리아나를 낳으려고 진통 중일 때, 간호사를 한 번밖에 부르지 않았다. 다행히 남편이 계속 곁에서 도와줬다. 간호사들이 바쁘다는 걸 알았고, 남편과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다면 간호사들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간호사 호출 버튼을 누른 건 새벽 3시쯤이었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난 정말 간호사가 필요했다. 나는 나중에 다른 엄마와 아기가 위험에 처한 응급 상황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응급 상황까진 아니었지만, 나 역시 급한 상황이었다. 감사하게도 곧 의사가 나를 진찰하러 와서 해결되었다. 내 여동생이 간호사여서 몇몇 환자들이 간호사를 어떻게 대하는지 말해준 적이 있다. 나는 여동생이나 다른 많은 간호사들이 만났던 그런 갑질하는 환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긴급 상황이 오기 전까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나는 도움을 청하는 게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나는 ‘내가 민폐가 되는 것 같다’는 사고방식을 고집한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난 정말 상관없다. 우리 부부는 우리 능력과 건강한 범위 내에서 사람들에게 시간을 내고, 도와주고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할 것이다. 여유로운 사역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공간을 만들거나 일정을 조정한다. 우리는 이것이 건강하고 도움이 되는 가족들이 항상 가까이에 있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기독교 공동체가 우리를 성가신 존재로 느끼게 하는 가장 마지막이 되어야 함에도, 때때로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말이나 무언의 의사소통을 통해 그것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환영하고 훌륭하며 도움이 필요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찾는 이들을 초대하는 교회 공동체도 많이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 예수께서는 직접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에게 그의 생애 최악의 밤에 함께 있어 달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함께 밤을 새우고, 겟세마네 뜰에서 고통스럽게 기도할 때 깨어 있으라고 부탁하셨다. (마 14:33) 예수님은 밤을 보내려면 그들의 실제적 존재가 필요했다. 예수님은 그들과의 우정에 의지했다.

 그러니 9번들아, 사람들이 우리를 돕겠다고 하면 그 제안을 받아들이자. 또한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겸손함을 가지자. 우리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많고, 사람들이 특히 우리가 우리 자신이고 주저하지 않을 때 우리와 함께 시간 보내는 것을 즐긴다고 믿자. 우리의 필요나 욕망을 말하지 않으면, 게으름의 악습에 얽매여서 스스로를 잊게 된다. 우리는 당연하게 우리의 필요나 욕구가 다른 사람들의 욕구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생각은 틀렸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의 존재와 관대함을 통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축복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도움을 청하거나 사람들을 환영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으셨다. 또한 친구들에게 자신의 필요를 표현하셨다. 당신은 성가신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성가신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느껴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어떻게 그 감정들과 싸우는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하는 연습을 하라. 친구나 존경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하라.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39일. 리드하고 즐겨라


 우리는 어떤 유형의 리더인가? 일부 에니어그램 9번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갈등이 일어나기 때문에 리더를 맡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갈등을 피하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데에 익숙하다는 것을 기억하라. 만약 우리가 리더십을 발휘할지 말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리더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내 삶에서의 리더 모습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왕이나 왕비(리더의 리더)에게 지혜를 말하고 그들은 내 말을 듣는다. 하나님은 최종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조언할 수 있는 위치에 나를 두셨다. 이는 곧 조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참모진의 일원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괜찮은 에니어그램 9번으로서, 나는 책임질 필요를 느끼지 않지만 필요하거나 무능함을 보게 되면 책임을 질 것이다.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게 두렵지는 않다.

 9번이 좋은 리더가 되지 못한다고 말하게 두지 말아라. 9번은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경이로운 리더가 될 수 있다. 그렇긴 하지만, 제멋대로 자존심을 부리거나 건강이 좋지 않은 리더는 에니어그램 번호와 상관없이 좋은 리더가 될 수 없다. 9번은 잘 이끄는 능력이 있다. 1번 날개인 개혁적 측면과 도덕적 생활을 끌어내어 성실하게 이끌어갈 수 있다. 8번 날개로는 열정적인 올바른 행동을 해낼 수 있다. 이게 바로 9번의 위대한 점이다. 우리는 올바른 행동으로 이끌 것이고,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자신과 자신의 몸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우리는 성실한 활동가다. 남을 조종하지 않고, 남보다 뛰어나지 않고, 자기 삶과 행동의 증인이 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격려한다. 우리는 더 건강할수록 복잡한 문제와 시스템을 최소화하거나 단순화하는 행동을 덜 한다.

 9번으로서 우리는 모든 유형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 필요할 때 카리스마 있고 리더 같은 3번 유형으로 기능할 수 있다. 그리고 결단력 있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하거나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인정한다. 우리는 일을 끝내기 위해 가장 적합한 사람에게 묻거나 일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

 또한 9번은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사람들은 우리가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줬기 때문에 우리를 믿는다. 우리는 자기 얘기를 꺼내지 않고 기꺼이 경청한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이 잘 되길 바란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희생을 해서라도 그들에게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더욱이, 더 건강한 에니어그램 9번이 되어갈수록,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우리에 대한 특정 갈등과  반발 또는 비판을 의미하더라도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데 더 능숙해진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좋고 가장 덜 해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우리는 사람보다 이익을 높이지 않는다. 우리는 진정한 팀 플레이어다.

 아마 나처럼 당신도 대부분 고문으로 일해왔을 것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여러 번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는데 특히 기독교 기관의 정의, 인권, 은폐와 관련해서 일했다. 중요한 리더 역할을 절대 맡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고, 고문 역할을 가장 자주 맡는다. 그리고 조언(자문)이 하나님이 주신 역할과 선물이라면 그렇게 해라. 최대한 활용해라.


-자신에게서 어떤 리더십 자질이 보이는가?

 당신이 리더십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혹은 사용하지 않는지 적어보라.

-만일 있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라고 부르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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