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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수요예배_에니어그램묵상집나눔모임(6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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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들목하늘교회 작성일22-10-26 19:08 조회8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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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차

나는 사랑 받고 있습니다


 내가 첫 아이를 아기 담요로 둘러쌌을 때, 아이의 얼굴은 분노, 두려움, 혼란 그리고 슬픔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9개월 동안 아이는 내 자궁 안에서 편안하고 안전 속에 단단히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이제 아이는 갑자기 한 번도 겪지 못했던 배고픔, 찬 공기, 뜨거운 공기, 접히지 않은 팔다리, 통증 그리고 방향 감각 상실 등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중력 또한 경험해본 적 없는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그가 원했던 것은 익숙하고 따뜻하며 보호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우선하여 감쌀 수 있는 안전함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아이를 담요로 감싸려고 했을 때, 아이는 팔과 다리를 격렬하게 움직였고, 담요로 아이를 거의 감쌌다 싶었을 때도 팔다리가 갑자기 다시 튀어나왔습니다. 상당한 노력 끝에 마침내 나는 힘겨운 실랑이를 끝내고 담요와 내 두 팔로 아이를 안전하게 안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아이를 꼭 껴안고 앞뒤로 흔들며. 아이의 엉덩이를 가볍게 두드리며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엄마가 여기 있어. 넌 안전해, 넌 안전해’. 

 느렸지만, 확실히 아이의 날카로운 비명은 훌쩍거림으로 변했고, 이따금 울음을 삼키기도 했습니다. 결국, 아이의 눈이 감기기 시작했고 아이는 잠이 들려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이불에 안전하게 싸여 엄마의 얼굴을 탐색하며 그 익숙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이내 아이는 편안해졌고 안정되었고 세상을 알게 되었으며, 또 적응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아이는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뭔가 무력감이 느껴졌고, 내 영혼에서는 갈망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너무도 혼란스러웠고, 안도감, 안전함 그리고 보호받고자 하는 감정들을 갈망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여전히 갈망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그 익숙한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하나님에 의해 마침내 붙들리고, 안전하게 되고, 중심을 잡게 될 것입니다(Oh, to be held. Oh, to be secure. Oh, to be centered.). 

 

성경 구절은 우리를 기르시고 모성애로 가득하시며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고통받는 자들에게 평안과 안정을 주시고, 두려움을 이길 용기를 주시고, 약한 자들에게 힘을 주시며, 집 없는 이들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시편 17:8)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시편 57:1)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시편 91:4)


 살아계시고, 항상 존재하시고, 영원히 사랑하시고, 돌보시며, 그 자체로 역사이신 하나님은 마구 움직이는 아이를 가까이 안으시고, 따뜻하게 감싸 안으심으로 아기를 보호하십니다. 마치 재난이 닥쳤을 때 새끼를 가까이 안으려는 독수리와 폭풍우 속에 겁에 질린 아이를 위로하는 부모처럼 하나님은 두려운 자들에게 피난처와 힘을 주십니다. 

 

6번 성격 유형으로서의 삶은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이따금 어디가 가장 가깝고 안전한 길인지 알려 줄 누군가를 갈망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잘못된 길을 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절망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더 현명하고 확신에 차서 안전한 길을 인도하는 누군가의 음성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당신의 갈 길 잃은 모습을 비난하지 않으십니다. 그럴 때 오히려, 하나님은 당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십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용기가 부족한 채로 이 삶에 대한 지름길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 대신, 하나님은 당신의 길을 가도록 담대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일이 쉬운 일이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6번들이여 부디 용기를 내십시오. 당신은 안전합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당신의 집에서 편안한 장소를 찾으세요. 아마도 그것은 안전함과 안락함을 주는 의자, 구석 그리고 침대일 것입니다. 담요를 찾아서 그것을 당신의 어깨와 몸 주위에 포근히 감싸세요. 15초 동안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깊이 들어가 잠기세요. 천천히 15초간 숨을 내쉬며 모든 근심과 두려움을 내려놓으세요. 이것을 여섯 번 반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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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24 하나님을 의심하다


6번이 때때로 충성주의자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한편 우리는 의심이 많은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는 의심이 많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교회 내에서 의심의 문제는 종종 믿음이 없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나님에게 질문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십시오!”


글쎄, 나는 그것이 쉽다고 말하고 싶지만, 내 두려움을 때때로 다른 사람들에게 투영하는 충성주의자로서, 나는 두려움을 하나님에게 투영하는 경향이 또한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버려짐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나의 핵심적인 두려움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특히 혹독한 사역의 시기에 마음이 흔들릴때는 하나님이 진정 나와 함께 하시는지 의심했습니다. 나는 사명을 위해 나를 준비시킬 것으로 믿었던 신으로부터 버림받고, 보이지 않고, 준비되지 못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는 성경에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불에서 끌어내신 하나님을 원했습니다. 나 역시도 불에서 건짐을 받고 싶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내 믿음은 약해지고 있었고, 의심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심지어 목회자임에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심하는 이 시기를 겪을 때마다 나는 하늘 문을 두드려 응답을 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럴때면 기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제가 기도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요. 대신 나는 침묵을 선택합니다. 마치 하나님과 내가 서로에게 침묵으로서 대응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의심을 증폭시키고 열등감만 느끼게 할 뿐입니다.


목회자들은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의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이미 의심하는 영적 거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흔히 거인의 믿음을 가진 자들의 명예의 전당으로 여겨집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의 믿음은 히브리서 11장에 언급될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더 나아가 그 이야기를 더 깊이 파고들다보면, 하나님께 의문을 품고, 불순종하고, 도망치고, 의심했던 사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의심-정직하고, 날것이며, 취약한 의심-은 항상 관계적이고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신의 순전한 신비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의심으로 인해 스스로 위축되기 보다, 의심은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의심은 내가 책임을 지지 않고,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께 의심을 고백할때 성장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시편은 귀를 빌려주신 하나님께 의심과 두려움을 기도하는 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의심은 더 깊은 진실과 친밀함으로 이어집니다. 시인 마들렌 랭글(Madeleine L'Engle)은 "무한한 질문"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라온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의심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습니다. 질문하지 않으면 제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무한한 질문에 유한한 대답만 돌아온다면, 당신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 의심의 가치는 당신이 하나님의 계시에 계속 열려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의심한다는 것은 그저 끔찍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심지어 선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의심을 품고 있는 그 순간조차도, 믿음은 걸음을 한발짝 내딛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의심, 회의, 질문, 두려움을 갖게 될때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거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의심을 환영하고 들으시고 이해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의심을 인정하고 나면,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신비스러운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친밀함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의심하는 자여, 하나님은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 저의 두려움으로 인해 제가 가진 의심을 당신께 투영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가지고 당신 앞으로 나아오길 원합니다. 그리고 당신께 침묵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당신이 나를 버리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불 가운데서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알기 원합니다. 극한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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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39 나는 사랑 받습니다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은 상실, 버려짐, 분리됨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잃는 것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나는 지지, 안전, 사랑, 혹은 우정을 잃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 식으로든 이런 것들을 잃어버릴 때, 나의 자아가치감은 ‘거짓말’에 취약해집니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게 틀림없어.나는 충분히 열심히 일하지 않았어.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어야 했어.나는 충분하지 않아.나는 가치가 없어.’

이런 일이 일어날 때면, 나는 건강하지 않은 에니어그램 3번의 모습으로 향합니다. 나는 내 노력으로 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나는 내가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더 많은 목표를 성취한다면 다시는 어떤 것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내가 성취한 것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다면 나는 충분한 사람으로 보여질 것입니다.

6번으로서, 나는 건강과 성취를 향해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 길이, 실은 피로와 고통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임을 알게 됐습니다.

어떤 에니어그램 유형도 수치심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고, 나도 6번으로서 내 몫을 경험했습니다. 수치심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인생에서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이제 나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건강하지 않은 것들이 아닌, 나를 ‘건강한 삶으로 이끌어줄 지속적인 실천’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스스로, 그리고 상담을 통해 경험하는 기도와 자기성찰은, 나를 지탱해주며 나를 성장으로 이끌어줍니다. 이러한 실천 가운데 수치심의 거짓말은 그 정체-지옥의 구덩이에서 나오는 거짓말-가 드러납니다. 나는 그것을 명명하고 조율하는 법을 배울 수 있고, 파괴하는 대신 세우시는 하나님, 우리 삼위일체 하나님의 거룩하고 창조적인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은 내가 누구인지 말씀해주십니다.*


내가 ‘나는 충분하지 않아, 더 많은 것을 성취함으로써 이것을 극복해야 해’라고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너는 나로 인해 충분하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나는 가치가 없어, 나는 내 가치를 증명해야 해’라고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너는 나의 소중한 아이야. 너는 증명할 것이 아무것도 없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무것도 잃지 않고 실패를 피하기 위해서 나는 더 많은 것을 성취해야 해’라고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미 그것을 성취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 주님, 제 마음을 너무나 자주 사로잡는 거짓말들을 지워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가 그것들 대신 당신의 진실에 사로잡힐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거짓을 드러내주시고, 그것을 명명하고 그것을 다스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제가 누구인지 당신이 말씀하시는 것에 매달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나는 사랑 받습니다. 나는 충분합니다. 나는 가치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아십니다. 나는 당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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